첨생법, 지원과 규제완화가 관건
올해 개정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첨생법)’이 내년 2월 시행 예정인 가운데, 세부 사항을 담은 시행령도 입법예고를 앞두고 있다. 개정된 첨생법은 기존에 중대 및 희귀 난치질환자에 국한되던 임상연구 대상자가 모든 사람으로 확대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임상시험 단계에 있는 의약품도 해당 질환에 대체 치료제가 없거나 중대·희귀 난치질환 환자일 경우 심의위원회로부터 안전성 및 치료계획 승인을 받아서 환자에게 쓸 수 있게 된다. 바이오 업계는 연구의 폭이 넓어지고, 세포치료제 연구개발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 보다 10년 앞서 첨생법을 시행한 일본은 어떻게 환자의 치료 기회를 확대하고, 세포치료 기술의 개발이 활성화되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했는지 살펴보자.
일본, 재생치료 허용 10년…제한 없이 시술
일본은 줄기세포치료 강국으로 꼽힌다. 재생치료 전문 병원이 성업 중이며, 전 세계 환자가 몰려들고 있다. 2022년 한 해 세포치료를 받은 환자는 7만 3819명, 투여 횟수는 11만 4077건에 이른다.
일본이 줄기세포치료 강국이 될 수 있던 배경에는 임상연구 지원에 대한 유연한 시스템, 그리고 신기술의 빠른 확산을 위해 신속허가제도를 마련한 정부의 노력이 있다. 토대가 된 것은 역분화만능줄기세포(iPSC)다. iPSC 연구에 매진하던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가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뒤, 일본 정부는 줄기세포를 미래 의학의 중심축으로 정했다.
일본에서는 2014년 1월, 의료기관에서 제한 없이 세포치료를 할 수 있도록 ‘재생의료 등의 안전성 확보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재생의료안전법)’이 시행됐다. 법의 골자는 위험도에 따라 규제를 구분한 것이다. 위험도가 낮은 세포치료는 의약품이 아닌 ‘첨단재생의료 제품’으로 규정하고, 의약품 허가를 받기 전에도 시술이 가능하도록 했다. 대신 위험도가 높은 시술의 무분별한 시행을 막기 위해 세포치료를 시행하는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허가를 받도록 규정했다. 시장을 열어주고 필요 것만 규제하는 것이다.
재생의료안전법에서는 재생의료를 사람의 생명 및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따라 세종류로 분류하고 그 명칭을 정했다. 고위험 세포(역분화줄기세포 등) 치료는 ‘제1종 재생의료 기술’, 중위험 세포(성체줄기세포 등) 치료는 ‘제2종 재생의료 기술’, 저위험 세포(체세포 등) 치료는 ‘제3종 재생의료 기술’이다.
2024년 6월 현재 3581개의 세포 배양 가공시설이 운영되고 있고, 5724건의 의료제공 계획서가 제출되어 있다. 수도권인 관동 지방이 2966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 가운데, 각 지역별로 골고루 재생의료 계획서를 제출했다. 어느 지방에 살더라도 주변에 재생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시설이 있다는 뜻이다.
재생의료제품 ‘조건부 조기승인 제도’ 도입
재생의료안전법의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안전하면서도 윤리적인 방법으로 재생의료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조허가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다. 재생의료안전법이 시행되면서, 두 가지 제도가 도입됐다. 두 제도 모두 임상연구부터 승인까지 기간을 단축시켰다.
일본후생노동성은 재생의료제품에 대해 ‘조건부 조기승인 제도’를 도입했다. 치명적인 질환을 치료할 가능성은 있지만, 환자 수가 적어 임상3상시험을 하기 어려운 의약품에 대해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사용을 조기에 승인하는 제도다.
일본 PMDA(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 Pharmaceuticals and Medical Devices Agency)는 재생의료제품이 3가지 조건을 충족할 경우 조건부 조기승인을 한다. 우선 안전성에 중대한 우려가 없어야 한다. 또 잠재적 효능이 있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그 특성이 다른제품과 동일하지 않아야 한다.
▲재팬 티슈 엔지니어링(J-TEC)의 배양피부 ‘제이스’와 배양연골 ‘쟈크’ ▲테루모와 오사카대학이 개발한 골격근아세포의 중증심부전에 이용하는 ‘하트시트’, ▲JCR파마가 개발한 중증 이식편대숙주병에 이용하는 타가골수유래 간엽계 간세포(MSC) ‘템셀’ 등이 조건부 조기승인 제도를 통해 판매되고 있는 대표적인 제품이다.
일본의 대형 제약사들은 벤처를 인수하거나 업무제휴, 투자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재생의료 사업 진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속심사제도, 임상시험부터 승인까지 7개월 단축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사키가케(先駆け) 지정’이다. 이는 치명적인 질병에 대한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를 필요에 따라 우선 협의를 거쳐 빨리 승인하는 제도다.
사키게케 지정을 받기 위해서는 ▲치료약의 획기성(product uniqueness) ▲대상질환의 심각성(indication is severe) ▲대상질환에 매우 높은 유효성(extremely high efficacy) ▲일본 내 우선순위 개발(priority development in japan) 등 4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사키가케 지정으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심사기간의 단축이다. 표준심사기간의 절반인 6개월만에 심사를 받을 수 있다. 그 밖에도 ▲우선적인 대면상담 ▲PMDA 전담 담당자 지정 ▲재심사기간 최대 10년 연장 등이 있다.
한국은 2001년 이래 15개 품목의 세포치료제 제조허가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2019년 4월 이후 국내 기업이 개발, 허가를 받은 품목은 없다. 2021년 3월 노바티스에서 개발한 킴리아주에 대한 품목허가 이후 4건의 수입 유전자치료제에 품목허가 실적만 있을 뿐이다.
반면 일본은 2016년 2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의료기기 10개, 체외의료진단기기 1개가 사키가케 지정을 받았다. 2020년 이후에도 13개 제품을 품목허가했다.
선진국, 재생의료치료제 개발 위해 신속 개발 프로그램 도입
글로벌 재생의료 시장 규모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스카이퀘스트는 2019년 229억달러(약 31조8000억원)에서 2030년 1277억달러(약 177조4000억원) 규모로 연평균 17.4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이벨류에이트 파마(Evaluate Pharma)는 재생의료 분야 중 CGT의 시장 규모가 2021년부터 2026년까지 연평균 49%의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같은 기간 합성의약품의 예상 연평균 성장률은 5.7%에 그쳤다.
이러한 성장에 따라, 선진국에서는 신속 개발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첨단재생치료제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실제 미국 FDA는 의학적 미충족 수요를 해결할 수 있는 재생의료치료제의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해 첨단재생의료치료제 신속심사제도(RMAT)를 운영하고 있다. EU는 첨단의료제품(ATMP)의 개발과 시판허가를 촉진하기 위해 2007년 특별법을 제정했으며, 이를 통해 EU 회원국 간의 제품 안전성과 사후 추적관리를 효율적으로 한다.
2025년 개정 첨생법 시행, 첨단재생의료 시장 활성화 기대
한국도 2020년 8월,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첨생법)’을 제정하며 첫 발을 뗐다. 첨생법은 첨단재생의료의 안전성 확보, 기술 혁신·실용화, 의약품 품질 확보 등이 목적이다. 2025년 2월 개정된 첨생법이 시행되면 줄기세포 치료제를 비롯한 관련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임상 단계에서 환자에 대한 판매가 가능해지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치료제 상업화 시점을 앞당길 수 있고, 해외 원정 치료를 가는 환자들도 국내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줄기세포 시장이 활성화되고 벤처투자도 활발해지는 선순환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일본 토탈셀클리닉 도쿄 내부(왼쪽)와 세포배양센터(오른쪽)>
차바이오텍은 2014년 일본에 진출해 일본 토탈셀클리닉 도쿄(TCC TOKYO)에서 지금까지 1만명 이상의 환자에게 재생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재생의료가 국내에서 가능해질 경우 이 경험을 바탕으로 분당차병원을 비롯한 전국의 차병원 네트워크를 활용해 안전하고 체계적으로 재생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차바이오텍은 개발 중인 세포치료제를 활용해 중증·희귀·난치병 환자들에게 더 많은 치료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진행 중인 파이프라인 임상과 사업화의 속도를 높이는 한편, 국내 세포·유전자치료제 CDMO 사업이 활성화 되면 매출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