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덕분에 일과 공부 ‘일석이조’

지난 2월 11일 차바이오컴플렉스에서 ‘차 의과학대학교 2025학년도 대학원 학위수여식’이 열렸다. 차병원∙차바이오그룹이 2022년부터 운영해온 ‘연구원 R&D 박사과정’에서도 올해 졸업생 3명이 배출됐다.
R&D 박사과정은 차 의과학대학교 바이오소재공학과에 신설된 계약학과다. 석사학위를 가진 연구원에게 박사 학위 취득 기회를 주고, 회사는 우수 인재를 확보해 R&D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총 100여명의 대학원 졸업생 중 R&D 박사과정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3명. 그 중에서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며 긴 시간을 걸어온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처 끝내지 못한 숙제를 다시 시작하게 해준 기회’
차의학연구원 TR센터 이혜진 책임연구원은 2022년 R&D 박사과정 1기로 입학했다. 비임상 실험에서 조직분석을 담당하며 20년 넘게 현장을 지켜온 그에게 R&D 박사과정은 미처 끝내지 못한 숙제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제도 도입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책임은 회사가 정말 인재육성에 진심이구나, 라는 점을 느꼈다고 한다.
“지원 당시 40대 후반에 접어든 제가 과연 회사 일을 하면서 박사과정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이오소재 분야에서 전문가로 성장하겠다는 의지와 회사의 체계적인 지원 제도를 믿었습니다. 몇몇 분들은 이 나이에 학생이 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럽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저에게는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는 게 즐거운 일이었기에 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 이혜진 책임

<4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졸업식에 참석한 이혜진 책임>
분당차병원 연구부 스마트MEC케어 R&D센터에서 근무 중인 양수지 주임은 2기 입학생이다. 1기 모집 공고를 봤을 때 그는 입사 1년이 되지 않아 지원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을 기다렸다. 2기 모집 공고가 나왔을 때 양 주임은 가족, 대학원 선배, 팀장까지 여러 사람에게 상담을 구했다. 당시 모두가 일하면서 박사과정을 밟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며 한목소리로 권했고, 이러한 조언에 용기를 얻어 지원을 결심했다.
“업무와 학업 병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족은 물론 팀장님, 그리고 이미 대학원에 다니던 선배들도 연구 커리어를 이어가는데 박사학위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을 주셨습니다” – 양수지 주임
현업에서 주제 발굴, 전문성으로 이어지다
두 사람 모두 박사 논문 주제가 현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일터에서 마주한 질문이 연구 아이디어가 되고, 학업을 통해 쌓은 이론이 다시 현업의 깊이를 더해주는 구조. R&D 박사과정이 지향하는 선순환이 두 사람의 연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혜진 책임이 몸담은 TR센터는 세포치료제 개발에 앞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비임상 실험을 담당하는 곳이다. 동물 모델을 제작하는 팀과 조직분석을 수행하는 팀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 책임은 그 중 조직분석 파트를 맡고 있다. 20년 넘게 병원·학교·기업에서 비임상 실험 평가를 하고 있는 그의 박사 논문 주제는 ‘보툴리눔 독소 A의 시신경 염증 모델에서의 보호 효과’다.
이 책임은 “염증 조절이 치료효과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 오랫동안 주목해왔습니다”며 “최근 보툴리눔 독소 A가 항염증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이고 있어, 상대적으로 연구가 적은 시신경 염증 모델에서의 기전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고 설명했다.

<이혜진 책임이 세포 염증도를 분석하고 있는 모습.>
양수지 주임은 ‘임신중독증 발현 전 단계에서 조기 예측이 가능한 바이오마커 발굴’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양 주임은 “임신중독증 조기 예측 연구는 제가 현업에서 수행하고 있는 주요 연구분야이자, 산부인과 영역에서도 임상적·학술적 중요도가 높은 주제”라며 “현장에서 마주하는 문제의식이 연구 아이디어로 확장됐고, 학업을 통해 습득한 분석 기법과 이론적 기반이 다시 현업 연구의 깊이를 더해주는 선순환 구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연구자로서의 전문성이 한 단계 성장했음을 체감했습니다”고 덧붙였다.

<양수지 주임이 박사과정 중 2024년 발표한 연구 포스터>
강의실로 향하는 길은 혼자가 아니었다
오후 6시 이후에 시작되는 강의. R&D 박사과정은 직장인의 일정을 배려해 설계됐지만, 연구직의 특성 상 강의실로 가는 것이 쉽지 않을 때도 있었다. 두 사람이 과정을 완주할 수 있었던 데는 제도적 설계만큼이나, 주변 사람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혜진 책임은 “동료들은 업무와 박사를 병행하는 저를 ‘초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농담처럼 건넨 말이었지만, 그러면서도 회의나 업무 일정을 조율해줬습니다. 말보다 행동으로 응원해준 셈이죠”라며 웃음을 보였다.
지도교수의 역할도 컸다. 면역학 수업은 각 챕터를 나눠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이 책임은 발표 전에 지도교수를 찾아가 미리 점검을 받았다.
이 책임은 “몇몇 수업은 익숙지 않은 영어 발표 수업이었는데, 교수님께서 발음부터 발표 내용까지 꼼꼼히 봐주셨습니다. 처음엔 면역학 용어와 개념이 낯설어 힘들었지만, 덕분에 기초를 확실히 다질 수 있었습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면역학과 인체생리학 시험은 15지 선다에 200문제가 넘는 분량이었습니다. 처음 시험지를 받았을 때 눈앞이 아득했지만, 그 덕분에 이해력도 높아져 지금 면역 관련 업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고 전했다.
4년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학위 과정 중 유방암 초기 진단을 받았고, 가족들은 ‘다 그만두고 시골 내려와서 요양했으면 좋겠다’며 걱정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 책임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 책임은 “그 시기의 스트레스와 슬럼프를 오히려 박사학위 논문 작업으로 극복했습니다. 연구에 집중하는 것이 버티는 힘이 됐어요”라며 그 때를 기억했다. 가족도 그녀의 도전을 끝까지 응원했다.

<올해로 연구원 30년차가 된 이 책임은 연구실에서 탐구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양수지 주임 역시 지도교수, 그리고 직장 상사의 지도가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류현미 지도교수님과 저희 센터의 임지혜 부센터장님 등 제 연구 주제와 맞닿은 분야를 오랫동안 깊이 연구해오신 분들께서 연구 분석 결과부터 논문 구성까지 세심하게 짚어주셨고, 휴일과 주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간을 내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학위 과정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양 주임이 3년이라는 시간을 버틴 데는 시간 관리의 몫도 컸다. 양 주임은 퇴근 이후와 주말·휴일을 오롯이 과제와 데이터 분석, 논문 작성에 쏟아부었다. 양 주임은 “지인들과의 약속을 많이 줄였고, 커피를 많이 마시며 새벽을 버텼습니다”고 회고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졸업 준비학기였다. 새로운 분석법을 익히면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새벽까지 논문을 쓴 뒤 바로 출근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체력적으로도 지치고, 살도 많이 빠졌어요. 그래도 거의 다 왔으니 포기하지 말자는 마음 하나로 버텼습니다”고 말했다. 동기들도 큰 힘이 됐다. 2기 동기 중 나이가 가장 어린 양 주임은 연구뿐 아니라 다양한 경험과 조언을 나눠준 동기들에게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유쾌하고 좋은 동기들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궁금한 점을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 큰 힘”이었다는 것이 그녀의 이야기다.

<양수지 주임은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3년 동안 실험실 생활도 착실하게 수행했다.>
쉽지 않지만, 그만큼 얻는 것이 분명한 도전
박사학위를 받은 후 두 사람이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자신감’과 ‘시야의 확장’이다.
이혜진 책임은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현업에서 반복되는 루틴에 안주하지 않고, ‘왜(Why)’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분들께 이 과정을 추천합니다. 박사과정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넘어서는 과정입니다. 그 임계점을 한 번 넘어서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시야를 갖게 될 것입니다. 다만 ‘다들 하니까 나도 하지 뭐’라는 생각으로 시작하지는 마세요.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51세에 박사 학위를 받은 이 책임에게 졸업의 의미를 물었다. 그녀는 “인생의 큰 숙제를 마무리한 느낌입니다. 저에게 좋은 기회였고,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됐습니다”며 답했다.

<이혜진 책임과 가족들>
양수지 주임은 “주말이나 퇴근 후 개인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등록금 지원을 받으면서, 업무와 병행해 학위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막상 시작하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입학 전에 어떤 주제로 연구하고 싶은지 미리 고민해두면 더 좋습니다. 시간이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가거든요.”
양 주임은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때마다, 이 연구가 더 발전해 실제 임상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그 기대가 끝까지 이어갈 수 있게 해준 동력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양수지 주임과 가족들>
연구원 R&D 박사과정은
‘연구원 R&D 박사과정’은 차병원∙차바이오그룹이 2022년부터 운영하는 사내 인재 양성 제도다. 차의과학대학교 바이오소재공학과에 신설된 계약학과로, 석사 학위를 보유한 근속 1년 이상의 연구직이면 지원할 수 있다. 정규학기 4학기와 연구학기로 구성되며, 현업에서 수행 중인 연구 프로젝트를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삼는 것이 큰 특징이다. 등록금의 50%를 회사가, 25%는 대학이 부담하며 경제적 부담이 적다. 현재 차병원∙차바이오그룹이 계열사와 연구소, 차병원 소속 연구직들이 재학 중이며, 학업과 현업의 시너지를 통해 그룹 R&D 경쟁력을 이끌 박사급 인재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