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바이오]
2054년, 휴먼 프린팅 기술로
17번 복제된 인간 미키

2025년 3월, 원작 소설 ‘미키 7’을 기반으로 한 영화 <미키17>이 개봉됐습니다. 지구에 더 이상 사람이 살기 힘들어지자 인류가 살 수 있는 다른 행성을 찾아 나선 개척단이 휴먼 프린팅, 임상시험 등 바이오 기술로 여러가지 실험을 하는 내용을 기반으로 합니다. 차 의과학대학교 의생명과학과 정제균 교수와 함께 <미키17> 기술이 얼마나 현실성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 이 콘텐츠에는 다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차의과학대학교 의생명과학과 정제균 교수입니다. 오늘 함께 볼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미키17>입니다. 극장에서는 아쉬운 흥행 성적을 거뒀지만, 과학자의 입장에서 이렇게 보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작품이라 영화 속에 나온 바이오 기술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잘 죽고, 내일 봐!(Have a nice death, See you tomorrow!)” 라는 강렬한 대사로 시작하는 <미키17>은 2054년 미래를 그린 공상과학 영화입니다. 지구에 살던 주인공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는 친구인 티모(스티브 연)와 같이 마카롱 가게를 운영하다 망하면서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사채업자를 피하기 위해 행성 이주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는데 그 중 ‘익스펜더블(Expendable)’ 역할을 맡아 개척단에 합류합니다.

<미키는 인류를 위해 미지의 우주를 개척하겠다는 사명감보다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익스펜더블로 개척단에 합류했다>
#장면1. 소모용 인간 ‘익스펜더블’의 시작, 바이오 프린팅
‘익스펜더블’은 말 그대로 소모품에 가까운 복제인간을 말한다. 익스펜더블이 되면 위험천만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죽을 때마다 폐기처분 됐다가 바이오 프린터로 정확하게 같은 기억과 같은 모습을 가진 사람으로 인쇄돼 다시 살아난다.
미키는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이 이끄는 새로운 행성 개척단과 함께 우주로 향한다. 개척단은 익스펜더블인 미키를 이용해 자신들이 발견한 행성이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인지 조사하고 살아남기 위한 백신을 개발한다. 그 동안 주인공 미키는 우주 밖에서 방사선에 노출되거나, 각종 바이러스에 노출되며 임상시험을 당한다. 미키가 죽고 다시 살아날 때마다 그의 이름 뒤에는 미키10, 미키11, 미키12와 같이 숫자가 붙는다. 이렇게 4년 반이 지나 미키는 미키17에 이르게 된다.


<미키가 저장한 유전체 정보를 바탕으로 바이오프린터에서 재생되는 모습>
개척단이 처음 한 일은 벽돌만한 저장장치에 미키의 생체 정보를 스캔하는 것입니다. 유전체(Genome) 정보를 저장해 이를 바탕으로 그를 되살리기 위해서인데요. 우선, 사람에게는 약 30억 쌍의 DNA 염기서열로 구성되어 있고 한 개의 염기를 1바이트로 환산하면 3GB가 됩니다. 휴대폰 용량보다 훨씬 적은 양이죠. 전세계 인구인 81억명의 유전체 정보를 모두 저장한다고 하면 약 2만 3천 페타바이트(PB)가 됩니다. 이는 방대한 데이터지만 반도체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벽돌보다 더 작은 장치에 전세계 인구의 유전체 정보를 저장하는 것도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저장된 정보만으로는 생명체를 완벽히 재현할 수 없습니다. 2025년 현재의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은 세포를 증식시키는 기술을 이용해 피부나 간 조직, 연골 등 각각의 장기를 개별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혈액이나 호르몬, 신경망이나 면역 시스템 등 우리 몸을 작동시키는 이른바 소프트웨어는 아직 재현할 수 없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탐나는 기술 중 하나인 ‘마인드 업로딩’ 즉, 기억 추출 및 디지털화 기술도 공상과학에 가깝습니다. 뇌에는 약 860억 개의 뉴런과 방대한 시냅스 연결로 이루어진 신경망이 있습니다. 수 많은 연구자들이 뇌와 신경망, 기억에 대해 연구하고 있지만, 명확하게 밝혀진 범위조차 한정적이라 아직까지 미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기억은 신경망 내에서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전기화학적 활동으로, 기억을 재현하려면 뉴런들의 연결 방식과 시냅스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신호 패턴을 완벽히 분석해야 합니다. 이를 완벽히 디지털화해 다른 뇌에 이식하는 기술은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실현 가능성도 낮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장면2. 복제인간 ‘멀티플’은 정말 나와 같을까?
처음 휴먼 프린팅 기술이 개발된 뒤 지구인들은 오용을 방지하기 위해 ‘멀티플’ 금지법을 만든다. 한 사람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도록 같은 사람이 두 명 이상의 멀티플이 될 경우 원본과 복제본 모두 육체와 기억을 영구 삭제한다.
얼음동굴 탐사를 떠난 미키17은 죽을 위기에 처한다. 함께 탐사에 나간 티모는 미키를 소모품 취급하며 두고 떠나버린다. 본부에서는 미키17이 죽었다고 판단하고 미키18을 만든다. 그러나 미키17이 외계 생명체 ‘크리퍼’의 도움으로 살아 돌아오고, 미키17은 미키18을 만난다.

<멀티플금지법은 휴먼 프린팅 기술을 개발한 알렌이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을 복제한 멀티플을 이용해 알리바이를 만들어 빠져나간 것을 들켰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미키17과 미키18은 휴먼 프린터가 동일한 방법과 조건에서 만든 복제인간입니다. 개체를 복제하는 ‘생식 복제’는 이론적으로 가능합니다. 체세포 핵 이식 기술(SCNT)로 1996년 영국에서 복제양 ‘돌리’가 태어났고, 2018년 중국에서 원숭이 복제에 성공했습니다. 이 기술이 사람에게 적용된 적은 없지만, 수정란이 비효율적으로 발달하거나 기형이 발생하는 등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둘은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미키17은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인 반면, 미키18은 거칠고 도전적인 행동을 일삼습니다. 영화에서는 뇌 일부가 제대로 프린팅 되지 않아 발생한 오류라고 설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리 복제인간이라도 성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는 쌍둥이를 관찰한 연구에서 밝혀졌는데요. 복제인간처럼 동일한 DNA를 가진 쌍둥이는 유전적으로 외모, 신체 구조, 생리적 반응에서 높은 유사성을 보이지만 후성유전학적 변화로 인해 유전자의 발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성격 또한 환경적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요.
영화에서는 계속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요. 조금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기억과 의식의 관점에서 볼 때도 복제인간은 ‘동일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동일한 기억을 심더라도 그 후의 상황을 경험하고 체화한 주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장면3. 여러 번의 죽음, 임상시험의 윤리적 문제는?
미키17은 개척단의 수장인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과의 특별한 저녁식사에 초대된다. 정신없이 스테이크를 먹던 미키가 갑자기 구토를 하며 쓰러진다. 이는 마샬이 우주선에 탄 사람들에게 나눠줄 배양육을 미키에게 먹여 안전한지 확인했던 것. 배양육에는 안전하지 않은 성장호르몬이 들어있었고 미키는 부작용을 겪게 된다. 여기에 더해 개척단은 미키에게 신형 진통제의 효능을 시험하기에 이른다. 마샬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미키17을 죽이려고 하면서 ‘미키는 어차피 소모품’이라고 한다.
미키의 희생을 앞세워 새로운 우주행성 ‘니플하임’ 개척 성공에 가까워진 마샬은 사람들을 모아 기념비를 세우겠다고 발표한다. 이때 갑자기 나타난 아기 외계 생명체 크리퍼로 인해 우주선이 발칵 뒤집힌다. 개척단은 이번에도 미키를 이용해 아기 크리퍼를 잡고, 잔인하게 임상시험을 진행한다. 크리퍼 무리들은 아기 크리퍼를 구하기 위해 우주선 밖으로 몰려든다.

<개척단의 수장인 마샬은 미키를 이용해 실험을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이전에도 미키는 수차례 임상시험을 당했습니다. 미키17이니, 17번이나 당했다는 의미겠지요. 미키는 동료 우주인과 대화를 나누며 죽는 느낌에 대해 ‘항상 무섭다’라고 말합니다.
<미키17>에서 복제 기술이 처음 나왔을 때 지구인들은 제도적∙윤리적으로 제지를 가하려고 노력하지만 우주로 날아가는 순간 관리∙감독의 주체가 사라져 아주 불법적인 실험을 감행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설정은 인간 생명을 단순한 실험 도구나 수단으로 취급하고, 윤리적 기준이 심각하게 훼손된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약이나 의료기기, 화장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임상시험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개발된 제품이 사람에게 안전한지, 유효한지 확인하기 위해서지요. 이 과정에서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대상자들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고 복지를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임상시험계획서, 임상시험동의서 등을 받아 검토합니다. 이 외에도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은 전문가들을 모아 임상시험 심사심의위원회(Institutional Review Board, 이하 IRB)라는 독립된 합의제 의결기구를 운영합니다. 계획과 다르게 임상시험을 수행하거나 미키처럼 대상자에게 예상치 못한 중대한 위험이 발생할 경우 해당 임상시험을 종료하거나 중지하라는 결정을 내립니다.

<미키는 영화 속에서 수차례 임상시험을 당한다>
최근에는 동물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도 윤리적인 문제로 인해 오가노이드나 AI 등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1일 미국 식품의약품국(FDA)은 일부 약물의 동물실험 요건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독성 및 세포주에 대한 AI 기반 계산 모델, 실험실 환경에서의 오가노이드 독성 테스트를 포함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사용해 대체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제약∙바이오 업계는 영화와는 달리 기술을 활용해 단계적으로 윤리 문제를 완화하고 더 짧은 시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약효를 확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영화를 너무 진지하게 봤나요? <미키17>에는 이 외에도 재미있는 장면이 많습니다. 중요한 결말도 포함하지 않았고요.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우리가 오늘 나눈 과학 지식을 떠올리며 즐겨보세요 🙂
※ 콘텐츠에 사용된 사진의 출처는 워너브라더스 공식홈페이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