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바이오]
과학기술로 인간은
얼마나 우세해질 수 있을까?

최근 바이오 기술을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영화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2024년 ‘디즈니 플러스’에 공개된 작품 <지배종>은 줄기세포 배양 기술, 오가노이드, 의료 AI 등을 활용해 이야기를 전개하는데요. 차 의과학대학교 의생명과학과 정제균 교수와 함께 드라마 속 기술이 현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 이 콘텐츠에는 다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차 의과학대학교 의생명과학과 정제균 교수입니다. 오늘 소개할 콘텐츠는 요즘 뜨는 바이오 기술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간 <지배종>입니다.
<지배종>은 생명공학기업 대표 윤자유(한효주 분)와 그의 경호원 우채운(주지훈 분)이 인공 장기 시대를 열기 위해 반대 세력에 맞서는 이야기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인공 배양육, 인공 장기, 의료AI 등 바이오 기술 발전에 따라 변화될 미래를 보여주기도 하고요. 무병장수에 대한 욕망, 권력욕에 휩싸인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지배종’이라는 제목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드라마에서 직접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최상위 포식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첫째는 먹이사슬의 정점에 서있는 인간이 자연적으로 고기를 얻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위적으로 만들면서 다시 한 번 사람이 지배종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는 인간 중에서도 바이오 기술을 독점해 타인보다 우월한 지위에 서고자 하는, 극 중에 국무총리(이희준)와 같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드라마 속에 녹아있는 과학 기술을 함께 알아볼까요?
#장면1. 피 흘리지 않는 고기 ‘인공 배양육’
주인공 윤자유는 생명공학기업 BF(Blood Free)를 운영하며 인공 배양육 생산에 성공한다. 육고기에 이어 연어, 참치 등 수산물과 곡물까지 배양에 나서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이로 인해 BF를 응원하는 사람과 적대적인 사람이 생긴다. 인공 배양육을 환영하는 사람은 도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식용으로 길러지는 동물들이 배출하는 메탄가스와 분뇨로 인한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BF를 응원한다. 반면, 배양육 산업이 활발해지면서 생계에 위협을 받는 1차산업 종사자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테러를 예고한다.

<디즈니플러스코리아 인스타그램에서 펼쳐진 배양육 찬반 토론.
배양육을 도입하면 이용할 의향이 있는지를 투표에 부친 결과, 찬성하는 사람이 많았다.>
드라마의 첫 장면은 윤자유 대표가 배양육을 소개하는 연설이 인상적인데요. BF가 생산하는 배양육은 동물의 조직에서 줄기세포를 추출, 배양해 만든 합성 고기입니다. 현실에서도 유사하게 근육 줄기세포 배양 기술과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배양육을 만들고 있습니다. 기술이 점점 고도화되면서 고기의 미세한 구조뿐만 아니라 마블링까지 재현한 사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요. 싱가포르, 미국 등 해외에서 배양육이 식품으로 승인된 사례가 있지만, 실제 고기의 맛과 영향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3D 바이오프린팅 기술로 고기를 생산하는 모습>
또, 고기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안전성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축전염병 위험이 없고 무균 환경에서 배양되기 때문에 고기보다 위생적일 수 있지만, 하나의 줄기세포를 계속 배양하게 되면 DNA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장면2. 죽는 순간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인공장기’
윤자유에게 한가지 비밀이 있다. 인공 배양육 생산 기술을 활용해 인공 장기 즉, 오가노이드를 만들고 있었던 것. 윤자유는 광우병을 겪는 동생을 보며 인공 장기를 생산해 죽는 순간까지 건강한 몸으로 살 수 있는 시대를 만들고 싶어한다. 경호원 우채운이 테러범들로부터 윤자유를 지키다 큰 부상을 입게 되고, 윤자유는 숨겨둔 기술을 활용해 우채운을 살린다.
이를 알게 된 국무총리 선우재(이희준 분)는 모두에게 오가노이드 기술을 적용하면 혼란이 올 것이라며 기술을 비밀에 부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본심은 홀로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존재가 되는 것. 이에 윤자유는 전국민에게 오가노이드 기술을 공개한다. 동시에 자신이 첫번째 임상시험 대상자가 되어 모든 장기를 오가노이드로 바꾸겠다고 선언한다. 문제가 없다면 지원자를 받아 임상시험을 확대하겠다며, 불치병 환자나 암 말기 환자들에게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한다.
<지배종 8화에 나오는 윤자유 대표의 기술 공개 장면>
‘오가노이드로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산다’라는 윤자유 대표의 목표는 멋지네요!
현실에서도 윤자유 대표처럼 전 세계의 연구원들이 오가노이드를 연구하고 있는데요.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실제 장기의 기능을 어느 정도 구현하는데 성공했고, 이를 활용해 질환의 모델링과 매커니즘을 연구하거나 신약개발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장기의 복잡한 생물학적, 물리적, 화학적 환경을 완전히 재현하는 데에는 아직 한계가 있습니다.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손상된 조직의 재생 치료제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나, 실용화하기 위해서는 안정성 및 재현성이 충분히 검증되어야 합니다. 드라마 속 상황이 실제였다면 우채운은 면역 거부 반응으로 혈전이 생겨 사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드라마처럼 실제 장기를 보다 정밀하게 모사할 수 있게 되고, 부작용을 줄이는 것을 넘어 특정 기능이 향상된 인공 장기 개발도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장면3. 실험부터 수술까지 도와주는 ‘의료 AI’
극중에서 윤자유는 사람보다 AI ‘장영실’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실험을 이끌어간다. AI 장영실은 보안부터 의료 분야까지 대화의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윤자유는 자신을 대신해 부상을 입은 경호원 우채운을 살리기 위해 BF에서 몰래 수술과 장기 이식을 하게 된다. 이때 장영실이 우채운의 몸을 스캔해 투명하게 보여주며 부상 부위와 수술 경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국무총리 선우재가 자신의 아버지 회사인 ‘도슨’에서 장기 배양을 시도했지만, 장영실과 같이 최첨단 AI 의료 설비를 갖추지 못한 그들은 번번히 실패한다. 결국 국무총리 선우재는 권력을 앞세워 BF를 장악하기 위해 윤자유를 공격하고, 윤자유는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한다. 선우재가 보낸 이들의 공격을 받으며 BF는 윤자유를 살리기 위해 파열된 장기를 오가노이드로 바꾸는 수술을 한다.

<’장영실’이 우채운의 몸을 스캔해 현재 상태와 수술 경로를 알려주는 모습
출처: 디즈니 플러스 공식 유튜브>
아직 장영실처럼 수술을 보조하거나 환자의 생체 반응을 3D로 재현해 보여주는 AI는 없습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엔비디아 등 대형 IT기업들이 장영실과 유사한 생성형 의료AI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IT기술과 결합한 의료AI 기술은 병리 이미지, 유전체 데이터, 임상 자료 등 다양한 형태의 초거대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통합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 의료진을 능가하는 해석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의료AI는 제가 연구하고 있는 ‘생명정보학 및 유전체학’ 분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제 연구실에서는 암을 비롯한 여러 질환에 대해 유전체 데이터를 바탕으로 환자의 치료 반응성 및 예후와 관련된 마커들을 발굴하고 기능을 해석하는 연구를 주로 하고 있는데요. 한 사람의 30억 쌍 전체 유전체 서열을 해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17년 AI 기반의 3세대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기술이 도입되면서 15분 내외로 분석 시간이 줄고 비용도 100만원 이하로 낮아졌습니다.
덕분에 개인화된 맞춤치료가 정확해지고, 신약 개발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여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로봇 기술까지 더해지면 <지배종>처럼 AI 의료 로봇이 인간보다 더욱 정교한 수술을 수행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겠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