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 

[세포주권]
동결기술, 세포치료제의 미래를 담다

2025.03.04

세포·유전자치료제는 손상된 세포나 조직을 재생해 신체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혁신적인 의료기술이다. 기존 치료법으로는 치료가 어려운 희귀·난치성 질환의 대안으로 주목받으면서, 국내외 많은 바이오기업들이 세포·유전자치료제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세포·유전자치료제를 개발을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할 할 과제가 있다. 바로 ‘시간’과의 싸움이다.

세포·유전자치료제의 핵심인 살아있는 세포는 매우 민감하고 수명이 짧다. 연구실에서 배양된 세포가 환자에게 도달하기까지, 또는 임상시험을 위해 보관되는 동안 그 생명력을 유지해야 한다. 세포 동결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세포 동결기술은 단순히 세포를 ‘얼리는’ 것이 아니다. 세포의 생명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시간을 멈추는 고도의 과학기술이다. 세포를 안전하게 보관하고, 필요할 때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세포 동결기술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세포치료제의 운송, 보관, 품질관리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임상시험에서도 세포동결기술은 필수적이다. 동결된 세포는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므로, 임상시험에서 일관된 결과를 도출하는데 기여하며, 임상시험 진행 시 필요한 세포를 빠르게 사용할 수 있어 연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세포 동결의 역사는 20세기 중반, 생물학과 물리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작됐다. 1949년 영국의 생물학자 크리스토퍼 폴지(Christopher Polge), 아놀드 스미스(A. U. Smith), 그리고 앨런 파크스(A. S. Parkes)는 글리세롤(glycerol)을 사용해 닭 정자를 동결보존하는 데 성공했다

< 크리스터퍼 폴지가 영국 국립의학연구소, 캠브리지 동물연구소 근무 때 촬영한 사진>

이 발견은 현대 동결보존학(cryopreservation)의 초석이 되었으며, 세계적 과학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돼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이들은 우연히 글리세롤이 세포를 보호하는 효과를 가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세포 내 얼음 결정 형성을 방지하고 세포 구조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초기의 세포 동결기술은 많은 한계가 있었다. 냉각 과정에서 세포 내외부의 물이 얼음 결정으로 변하면서 세포막과 내부 구조가 손상되는 경우가 많았다. 동결 후 해동 과정에서 세포가 터지거나 기능을 잃는 경우도 빈번했다. 냉각 속도, 동결보존제의 농도, 그리고 해동 속도 등 다양한 변수가 세포 생존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밝혀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1950년대와 1960년대는 세포 동결기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피터 마주르(Peter Mazur)는 냉각 속도가 세포 생존율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세포가 얼음 결정 형성으로 인해 손상되지 않으려면 적절한 냉각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밝혔다. 그의 연구는 1963년 ‘생물물리학 저널(Biophysical Journal)’에 발표됐으며, 이는 현대 동결보존 이론의 기초를 마련했다.

<피터 마주르 교수(맨 오른쪽)가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Oak Ridge National Laboratory)에 근무할 때 동료들과 촬영한 사진>

이 시기 동결보존제의 개발도 큰 진전을 이뤘다. 디메틸설폭사이드(Dimethyl sulfoxide; DMSO)와 같은 화합물은 세포 내·외부로 쉽게 확산되어 물 분자의 이동을 조절하고 얼음 결정 형성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DMSO는 특히 줄기세포, 면역세포, 정자와 같은 다양한 유형의 세포를 동결보존하는 데 널리 사용됐다.

1970년대에는 프로그래머블 냉동고(programmable freezer)가 도입되면서 냉각 속도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이 기술은 대량의 세포를 균일하게 동결할 수 있도록 했고, 특히 혈액은행과 조직은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바이알(vial)과 같은 표준화된 저장 용기가 개발되어 장기 보관과 운송이 용이해졌다.

세포 동결기술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현재 과학자들은 무동결보존제(cryoprotectant-free)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기존의 DMSO와 같은 화합물은 일부 독성을 가지고 있어 민감한 세포나 임상 응용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노기술과 바이오 소재를 활용한 새로운 접근법들이 제안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나노입자를 이용해 빠른 열전달과 균일한 냉각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 소개됐다. 이 기술은 기존 방식보다 생존율과 안정성이 더 높다.

또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분석은 미래 세포 동결기술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AI 기반 알고리즘은 다양한 실험 데이터를 분석하여 최적의 냉각 및 해동 조건을 예측하고 설계할 수 있다.

2011년 차병원에서 9년 동안 냉동했던 난자를 해동해 임신에 성공하고, 건강한 아들을 출산한 사례가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재 난자 냉동에 쓰이고 있는 ‘유리화 난자 동결법’은 1998년 차병원이 최초로 개발한 기술이다.

유리화 난자 동결법은 탱크에 슬러시 질소를 넣으면 탱크 온도가 영하 200도까지 떨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동결 보존액이 난자 안으로 파고들어 난자가 유리처럼 굳는 방식이다. 초급속냉동법으로 세포를 동결시키는 과정에서 세포질내 동결억제제와 물 성분이 녹아있는 유리처럼 변한다는 의미로 유리화 동결법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유리화 난자 동결법 이전에 널리 쓰이던 완만동결법은 난자 내에 존재하는 수분이 동결되면서 생긴 얼음 결정에 의해 난자가 손상돼 실패하는 사례가 많았다. 난자의 생존율은 40~60%에 불과했다.

<차병원이 운영 중인 30난자은행. 건강한 난자를 냉동 보관하려면 만 37세 이전에 하는 것이 좋다.>

유리화 난자 동결법 도입 이후 난자의 생존율은 80~90%로 향상됐다. 유리화 난자 동결법 개발로 암 등 난치병에 걸린 여성이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를 받기 전에 본인의 난자를 냉동해 두었다가 치료가 끝난 뒤 보조생식기술 (Assisted reproductive technology, ART)을 이용해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만혼이 늘면서 미혼 여성사이에서 난자 냉동 시술이 증가하는 추세다.

최적의 동결조건은 세포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 세포막의 수분 투과성, 세포 내 얼름 형성, 삼투 내성 한계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세포 특성에 맞는 적합한 동결법을 찾아 세포치료제 개발에 적용하면 얼리지 않은 세포치료제와 동일한 품질을 확보할 수 있으며, 사용할 수 있는 기간 또한 대폭 늘어난다. 대량 배양기술을 적용해 제조한 세포를 동결 보관했다가 의료진이 처방하는 즉시 해동해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는 저렴한 기성품 ‘(off-the-shelf)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

차바이오텍은 배아∙성체줄기세포부터 면역세포까지 질환 별로 적용 가능한 세계 최대 셀 라이브러리(Cell Library)를 갖추고, 암, 난치성 질환, 노화관련 질환 등 미충족 의료수요가 높은 질환에 적용할 수 있는 세포∙유전자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파이프라인별로 세포의 특성에 맞는 최적의 동결법도 함께 개발하고 있다.

세포 동결기술은 단순히 생명체를 보존하는 방법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 기술은 의학 연구, 난임 치료, 멸종 위기 종 보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수적인 도구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도 세포 동결기술은 더욱 정교하고 효율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특히 재생 의학과 개인 맞춤 의료 분야에서 이 기술의 중요성은 날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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